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진실의 조건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2022. 04. 08
18,000원
360페이지
9791156759522

오직 내 편의 말만 믿는 “내 편 편향”이 극심해진 오늘날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세계적인 철학자가 제시하는
철학이 ‘진짜’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탈진실(post-truth) 시대. 과연 해석에 따라 ‘너도 맞고 나도 맞을’ 수 있을까?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생회원이자 세계적인 철학자인 저자 오사 빅포르스는 언뜻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이 보이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탈진실의 사도들이 바라는 바라고 지적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단순히 속이기보다 사람들에게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 자체를 빼앗으려 한다. 혼란 끝에 피로에 빠진 사람들이 진실과 거짓의 구분 자체를 포기하고 그저 믿고 싶은 것만 믿기를 부추기는 것이다. 그저 믿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싸우는 오늘날 ‘내 편 정치’와 극심한 갈등은 그렇게 시작된다. 저자는 “진실을 향한 싸움은 점차 출처에 대한 신뢰성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믿음이 진실을 대체해버리는 탈신뢰(post-trust) 시대의 도래를 막기 위해 “철학자가 나서야 할 때”라고 선언한다.
이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철학을 주 무기로 삼아 심리학·사회학·언어학 등 인문 분야를 넘나들며 수집한 수많은 사례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진실을 구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규명한다. 그리고 진실을 지키기 위한 대중·언론·전문가 각각의 소임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제시한다.

믿었던 ‘열린 사고’의 배신!
포스트모더니즘은 선동가들에게 어떻게 이용되었는가
“이 책의 출발점은 철학이다.” 진실을 구별해내기 위해 저자는 먼저 진실이 무엇인지, 또 이와 근접한 개념인 사실, 거짓, 지식 등이 어떻게 정의되어 왔는지 개념을 살핀다.
맨 처음 짚고 넘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 사실을 바라보는 관점은 계속해서 변화해왔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리 대응론, 데카르트의 회의적 합리론, 니체의 가치 허무주의를 비롯한 고대-근대 철학자들의 주요 견해를 차근차근 정리한다. 그 뒤, 현대에 이르러 선동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의도적으로 곡해해 전파하고 있는 사실 허무주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들이 무기로 삼은 “모든 것은 그저 해석의 문제일 따름이다”라는 사고방식은 ‘사실’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선동가들은 이를 알고도 버젓이 “모든 것이 그저 해석에 불과”하다며 사실의 존재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명백한 사실, 가령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조차 의문을 제기할 빌미를 제공한다. 이렇듯 선동가들은 그들의 거짓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사실’을 없애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이러한 수박 겉핥기식 ‘포스트모더니즘’ 사고방식을 단순히 ‘열린 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편이 보다 객관적이고 포용력 있는 자세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사람만의 말이 맞겠느냐” 하는 논리로 접근하는 것인데, 이 역시 선동가들이 파놓은 사고 함정이다. 그들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대중뿐만 아니라 언론마저 마구잡이로 흔들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진단한다. “(그들은 사안을) ‘중립적’으로 다루지 않다는 이유로 공영 매체를 공격한다. 하지만 객관적이라는 말은 모든 주장(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과 근거가 없는 주장)을 똑같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성이 중립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저자는 보편타당한 사실과 진실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탈진실’ 시대의 도래를 부정한다. “‘탈진실post-truth’ 시대는 절대 없을 것이다. 좋든 싫든 진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사실 허무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반박해 “사실은 없다”라는 진술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사실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으며, 무슨 논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떤 논쟁도 무의미하게 만들려는 그들의 시도에 대해 저자는 “사실 허무주의는 철학의 대량살상무기와도 같다”고 지적한 뒤, 곧이어 《팩트풀니스》의 저자 한스 로슬링이 말했듯 “아뇨, 제 말이 옳습니다. 당신은 틀렸고요!”라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실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맞설 “가장 파괴적인 대항 무기는 역선전이 아니라 증거와 객관적 진실과 사실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빅포르스는 계속해서 ‘지식’ ‘믿음’ ‘거짓’ ‘증거’ 등 진실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주요 요소들의 철학적 개념을 쉬운 언어와 비근한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동시에 사실 허무주의자들의 무차별적이고 극단적인 공격으로부터 흔들리지 않도록 뿌리를 튼튼히 구축한다. 《진실의 조건》을 통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증거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의심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객관적 진실은 존재할까?”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일까?” “이해가 중요할까? 암기가 중요할까?” 이를 토대로 진실의 개념과 조건, 그리고 그 추구 당위성을 쌓아 선동가들에게 당당히 맞설 수 있다.

무지해도 당당한 사람들이 판치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지식이 중요한 이유!
하지만 진실을 좇는 것을 방해하는 상대는 비단 선동가들뿐만이 아니다. 적은 우리 내부에도 있다. 앞서 논의한 진실의 철학적 정의를 토대로 빅포르스는 3장 〈사고는 어떻게 왜곡되는가?〉와 4장 〈거짓말과 가짜 뉴스, 그리고 선전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서 어째서 선동가들의 그토록 노골적인 전략이 유효하게 작동하는지를 심리학·사회학·언어학 관점에서 분석한다.
“왜 우리는 그처럼 이상한 것을 믿을까?” 먼저 저자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 확언한 뒤, 인간의 이성을 망가뜨리는 확증 편향, 의도된 합리화, 역화 현상 등 다양한 인지기제를 하나씩 점검한다. 그리고 여느 책에서 다뤄지지 않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왜 이토록 부자연스러운 기제를 갖도록 진화한 것일까? 거짓을 믿는 것보다 진실을 믿는 것이 생존에 분명 유리해 보임에도 말이다. 심지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본능이 ‘진실’보다 ‘소속감’이 생존에 유효하리라 판단했다고 진단한다. 선동가들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들이 갈라치기를 통해 선동하는 ‘내 편 정치’는 ‘생존’을 위협한다.
그러나 소속감을 위해 진실을 등한시하는 행위는 결국 인류를 쇄락으로 이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어진 이성을 활용해야만 한다. 여기서 크나큰 착각은 이성이 단순히 내부동력만으로 작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판단의 준거, 즉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타당한 반대 증거를 놓고도 엉뚱한 무언가를 믿는 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반론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심리학자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가 연구한 더닝-크루거 효과이다. 이 현상은 지식 부족이 어떻게 인지 왜곡을 이끄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어, 시험 성적이 낮은 학생일수록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지식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닝에 따르면 오늘날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형성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의견을 형성하기가 지나치게 쉬워진 것”이다. 이를 통해 저자 빅포르스는 우리가 인지 기제에 속지 않고 진실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보다 타당한 근거를 갖춘 지식이라 설파한다.
물론 선동가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대중들의 지식 습득을 저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들이 전문가들과 전문성을 경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음모론과 같은 타당한 지식의 ‘대안적 내러티브’를 퍼뜨린다. ‘내 편’이 그저 무언가 믿을 수 있도록 ‘가짜 지식’을 건네는 것이다. 끊임없이 확산하는 음모론의 허위성을 모두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데다가 지식인들의 시간을 빼앗아 인류의 발전을 후퇴시킨다. 게다가 음모론은 반대 지적 자체를 음모 세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또, 이와 비슷한 기법으로 ‘거짓 동일시’라는 것이 있다. 가령 기후학자들이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과 ‘논의’ 중에 있다는 설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록 비전문가가 그 논의를 평가할 수 없다고 해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은 그 사안과 관련해 의견 불일치가 있으며, 양측 모두 증거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이러한 선동가들의 방해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빅포르스는 두 가지 차원에서 돌파구를 제시한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효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네 가지 실천 사항!
끝으로 빅포르스는 5장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육 현장의 과제〉와 6장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 향후 우리가 지속·발전시켜야 할 실천 과제를 제시한다. 다만 공론에 그치지 않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그의 노고가 빛나는 지점이다.
교육 선진국으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5장은 오늘날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려는 전 세계적 교육계에 도전과제를 안겨준다. 과연 교사는 학생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뒤로 물러서는 게 옳을까?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목하에 교육체제를 크게 변경한 이후 급격한 국제 교육성과 지표 하락을 나타낸 스웨덴의 실상을 통해 그 해답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저자는 스웨덴, 프랑스, 미국 등 이른바 교육 선진국들이 그저 ‘진보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입증되지 않은 구성주의 이론을 섣불리 받아들였다고 지적하며, ‘보수적’이라 오해받는 보편타당한 지식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인이 그렇듯 청소년 역시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무엇보다 관련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6장에서는 내용을 종합해 진실을 구별하기 위한 네 가지 실천 사항을 내놓는다. ‘비판적 사고’, ‘출처 비평’, ‘전문가 신뢰’ 그리고 ‘토론과 팩트 체크’. 이와 같은 실천 사항을 중심으로 선동가들의 거짓말과 선전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실증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론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다. 끝으로, 진실을 지키기 위한 대중·언론·전문가 각각의 소임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안을 제시하며 논의를 마무리한다.
철학·심리학·사회학·언어학 등 ‘진실’과 관련한 거의 모든 인문학적 지식을 집약한 이 책은 이 책은 세계적인 철학자 오사 빅포르스 연구의 첫 결실이다. 스웨덴이 철학의 힘으로 ‘지식의 적’과 맞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스티븐 핑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지식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 상황이 양극화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믿어 마땅한 ‘진짜’ 진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타당하고 분명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지금이 바로 철학으로 진실을 가려낼 때다.

오사 빅포르스
1961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다. 뉴욕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언어의 의미와 규칙을 연구한 논문 〈언어적 자유LINGUISTIC FREEDOMAN ESSAY ON MEANING AND RULES〉를 발표했고, 이후 언어철학과 정신철학을 넘나들며 수많은 글을 작성해왔다. 2002년 스톡홀름대학교 부교수로 임용되면서 스웨덴 이론철학 분야 최초의 여성 부교수가 되었고, 2008년 동 대학의 이론철학 교수 자리에 올랐다. 철학적 관점에서 진실과 거짓, 지식 저항의 원인을 분석하고 돌파구를 제시한 《진실의 조건ALTERNATIVE FACTSON KNOWLEDGE AND ITS ENEMIES》은 그의 대표작으로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으며 스웨덴 내 출판상을 다수 수상하였다. 또한 세계적인 팝 그룹 ABBA의 멤버이자 스웨덴의 국민 가수인 비에른 울바에우스가 설립한 출판사 프리 탄케FRI TANKE의 지원을 받아 사회 진출을 앞둔 11만 명의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에게 배포되어 스웨덴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스웨덴을 넘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그는 ‘지식의 적’에 맞서 이성과 진리를 수호하는 대중적인 지식인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9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인 스웨덴 한림원의 평생회원 18인 중 한 명으로 선출되어, 노벨문학상을 비롯한 유수의 상을 선정하고 있다.

추천사
들어가며

1. 우리는 왜 지식에 저항하는가?

우리는 사실에 저항하고 있는가?
지식이란 무엇인가?
증거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의심해야 할까?
믿음에 반대되는 근거들
지식의 가치

2. 사실이란 무엇인가?

사실 허무주의의 실체
객관적 진실은 존재할까?
사실은 인간이 만든 것일까?
트럼프와 포스트모더니즘
물이 반쯤 차 있는 컵의 진실
복잡한 점은 무엇이냐면……

3. 사고는 어떻게 왜곡되는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 맞을까?
왜 우리는 그처럼 이상한 것을 믿을까?
확증 편향
‘정치적으로’ 의도된 합리화
인지 왜곡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완고함, 그리고 역화 현상

4. 거짓말과 가짜 뉴스, 그리고 선전은 우리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언어와 거짓말
거짓말의 의미와 수법
우리는 왜 거짓말을 할까?
인터넷이 지식에 끼치는 영향
가짜 뉴스와 잘못된 뉴스
의혹을 심는 방법
그들의 주요 무기: 음모론
전체주의 국가와 가스라이팅

5.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위한 교육 현장의 과제

스웨덴 학교 시스템의 쇠퇴
구성주의가 교육 사고에 끼친 영향
교육 성과 하락을 촉발한 이념
지식을 바라보는 구성주의 관점
지식을 바라보는 민주적인 관점
이해가 중요할까? 암기가 중요할까?

6.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최악의 상황을 극복할 방법
비판적 사고
출처 비평
전문가 신뢰
토론과 팩트 체크
정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감사의 글
참고 문헌

나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려는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리고 철학자가 나서야 할 때라고 느꼈다. 이 책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여기서 나는 지식을 향한 위협을 철학적·심리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러한 위협에 맞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출발점은 철학이다.
---「들어가며」중에서

믿음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지식과 같지 않다. 당신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이 옳다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 믿음이 실제 진실이 아니라면 당신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게 아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중에서

당신이 세계 곳곳을 여행했을지 몰라도 세상 모든 곳을 가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세상의 지리와 관련해 알고 있는 지식 대부분은 책과 신문, TV, 라디오 및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얻은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출처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지리와 관련된 당신의 지식은 직접 다녀온 장소에 국한될 것이다.
---「증거는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중에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곧 내 믿음을 반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토론에서 자주 나타난다. 사람들은 특정한 믿음이나 이론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특정한 믿음이나 이론에 대한 반증이라고 주장한다. (…) 증거의 부재는 그 자체로 반론을 이루지 않는다.
---「어디까지 의심해야 할까?」중에서

근본적으로 사실 허무주의에 일관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사실 허무주의자가 스스로를 반박해 “사실은 없다”라는 사실적 진술이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론 허무주의자들은 그런 시도를 멈추지 않을 테고, 심지어 모순되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으며, 그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논쟁을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사실 허무주의는 철학의 대량살상무기와도 같다.
---「사실 허무주의의 실체」중에서

철학자 티머시 윌리엄슨이 지적했듯이 관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주 포스트모던 사고방식을 활용한다. 그들은 다른 이를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믿음을 진실과 거짓으로 분류하는 것은 관용적 접근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입장이 트럼프와 같은 선동가들이 몸을 숨기는 연막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이 모두가 단순히 관점의 문제라면, 트럼프의 관점은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트럼프와 포스트모더니즘」중에서

왜 우리는 타당한 반대 증거가 있음에도 뭔가를 계속해서 믿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 믿음에 대한 반론을 이해하고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그처럼 이상한 것을 믿을까?」중에서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과 어울리는 신문을 읽고, 자신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블로그를 팔로우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이러한 성향은 최근 분열된 언론 상황과 위험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 오늘날처럼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기’ 쉬운 적은 없었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출처를 쉽게 발견하고 자신의 믿음에 반대될 법한 출처를 쉽게 피할 수 있다.
---「확증 편향」중에서

인터넷은 예전에 비해 우리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져다줬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는 불가능하다. 진실하고 타당한 근거를 갖춘 믿음의 수를 세어봐야 하기 때문이다(그러고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 인구 증가를 반영해야 한다). 이는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추측을 요구받는다면 나는 사람들이 전에 비해 (예를 들어 세상의 오지에 대해서나, 대중문화에 대해서나) 더 많은 지식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보다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지식에 끼치는 영향」중에서

만약 우리가 가짜 뉴스를 ‘잘못된 뉴스’라고 받아들이면 이러한 현상을 포착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지고야마는) 실수를 포함한 진짜 저널리즘 기사와 가짜 뉴스를 구분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가짜 뉴스와 잘못된 뉴스」중에서

비슷한 기법으로 거짓 동일시false equivalence라는 것이 있다. 가령 기후학자들이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과 ‘논의’ 중에 있다는 설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비록 비전문가가 그 논의를 평가할 수 없다고 해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은 그 사안과 관련해 의견 불일치가 있으며, 양측 모두 증거를 갖고 있다는 인상을 전해준다.
---「의혹을 심는 방법」중에서

우리에게 도달하는 구체적 정보의 상당수가 거짓이라면, 우리는 정확히 무엇을 믿어야 할까? 누군가를 믿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객관적 출처가 존재하기는 할까? 이러한 의문이 주는 효과는 잘 알려져 있으며, 전체주의 국가의 선전과 결부된다. 혼란을 야기하고 이성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 말이다. 그들의 목표는 시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지도자를 따르도록 만드는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와 가스라이팅」중에서

두 극단적 입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진실이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고 믿을 근거는 없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진실은 기후학자와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출처 비평」중에서

기자들, 특히 공영 분야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스스로 최대한 객관적이어야 하며, 토론으로 잘 정립된 지식을 내놓지 않으면 객관성이 위협받는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모든 주장(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과 근거가 없는 주장)을 똑같이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타당한 근거가 있는 주장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성이 중립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토론과 팩트 체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