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2019. 09. 02
16,800원
404 / 페이지
9791156757931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余華). 그가 젊은 날 책과 음악 속으로 떠났던 다채한 여정을 담은 에세이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로 한국 독자를 만난다. 젊은 시절 책과 음악의 세계로 떠난 여정에서 즐겨 읽은 고전문학과 좋아한 고전음악에서 얻은 위화 문학의 자양분과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여행기다. 1993년 《인생》, 1996년 《허삼관 매혈기》를 출간하고 명실상부 중국문학을 선두에서 이끄는 작가로 손꼽히던 30대에 쓴 글을 모은 만큼 생명과 열정의 냄새가 코 끝 가득 차오른다. 이 책은 1997년 위화의 장편소설 《인생》(당시 제목 ‘살아간다는 것’)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허삼관 매혈기》 《가랑비 속의 외침》 《제7일》 《형제》와 소설집 《내게는 이름이 없다》 등 위화의 소설을 꾸준히 출간해온 도서출판 푸른숲에서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 이어 두 번째로 출간하는 산문집이다. 지금은 거장이 된 작가의 젊은 시절, 갓 벼려진 칼날 같은 통찰력을 시적인 문장에 담아냈다. 스스로 따스하고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이라 칭하는 글이니만큼, 위화를 알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안내서가 될 것이다.

위화余華

1960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났다. 단편소설 〈첫 번째 기숙사〉(1983)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1988) 등 실험성 강한 중단편소설을 잇달아 내놓으며 중국 제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첫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1993)을 선보인 위화는 두 번째 장편소설 《인생》(1993)을 통해 작가로서 확실한 기반을 다졌다.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인생》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세계적으로 ‘위화 현상’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중국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출간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중국에서 매년 40만 부씩 판매되며 베스트셀러 순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허삼관 매혈기》(1996)는 출간되자마자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위화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표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중국 현대사회를 예리한 시선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형제》(2005)와 《제7일》(2013)은 중국 사회에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전 세계 독자들에게는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산문집으로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등이 있다.

 

1998 그린차네 카보우르 문학상 Premio Grinzane Cavour

2002 제임스 조이스 문학상 James Joyce Foundation Award

2004 프랑스 문화 훈장 Chevalier de l’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2004 반즈앤노블 신인작가상 Barnes & Noble Discovery Great New Writers Award

2005 중화도서특별공로상 Special Book Award of China

2008 쿠리에 앵테르나시오날 해외도서상 Prix Courrier International

2014 주세페 아체르비 국제문학상 Giuseppe Acerbi International Literary Prize

2017 이보 안드리치 문학상 The Grand Prize Ivo Andrić

2018 보타리 라테스 그린차네 문학상 Premio Bottari Lattes Grinzane


• <중앙일보> 선정 필독서 100권

• 중국의 평론가와 문학 편집자 100명이 선정한 9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10권

• 타이완 <중국시보(中國時報)>가 선정한 좋은 책 10권

• 홍콩 <아주주간(亞洲週刊)> 선정 20세기 중문소설 TOP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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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문학에 대해

나는 위대한 작가의 내면에는 한계도, 생사의 간극도 없으며 그곳에서는 미추와 선악의 구분 없이 모든 사물이 평등한 방식으로 어우러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자기 내면에 충실해 글을 쓸 때도 한계가 없었다. 그래서 생과 사, 꽃과 상처가 동시에 그들 펜에서 등장해 서술과 화음을 이룰 수 있었다. _‘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중에서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만약 락스네스와 크레인의 두 작품이 없었다면, 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가 없었다면 나는 문학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참 뒤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를 보고 나서야 영화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처럼 〈청어〉와 〈소형 보트〉는 20년 전 내게 문학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들을 무척 좋아한다. 그들 때문에 눈을 떠서가 아니라 그들로 인해 문학의 지속성과 광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들 두 단편소설은 바다 위와 해변의 어떤 장면을 서술할 뿐이다. 그럼에도 마치 단편소설의 횡단면 분석이론을 증명하듯, 위대한 단편소설은 그 길이를 훨씬 뛰어넘는 위도와 경도를 가진다는 핵심을 보여주는 듯하다. _‘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중에서


나는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들에게 끌려 들어간다. 겁 많은 어린애처럼 조심스럽게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시간의 강을 천천히 걸어간다. 따스하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이는 여정이다. 그들은 나를 이끌어준 뒤 돌아갈 때는 혼자 가라며 등을 떠민다. 돌아온 뒤에야 나는 그들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_‘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중에서


> 음악에 대해


음악은 단숨에 사랑의 힘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달빛처럼, 혹은 폭풍우처럼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햇빛과 달빛을 받고 바람과 눈을 맞으며 다가오는 모든 사물을 맞아들여 그것들을 침잠시키고 소화시키는 드넓은 땅처럼 사람의 마음도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었다. _‘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 중에서


음악의 역사는 끝없는 심연처럼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야만 그 풍부함을 알 수 있고 경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작가와 작품뒤에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한 선율과 리듬이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가장 우렁찬 이름 뒤편에 수줍어하고 상심하는 이름들도 있으며 그러한 이름들이 대표하는 음악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고 알려준다. _‘음악이 내 글쓰기에 미친 영향’ 중에서


사실 보수냐 급진이냐는 어떤 한 시대의 견해일 뿐, 애당초 음악의 견해가 아니다. 어떤 시대에든 끝이 있기 때문에 시대와 관련된 견해 역시 소멸을 피할 수 없다. 음악에는 무슨 보수적 음악이나 급진적 음악이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음악은 각각의 시대와 다양한 국가 및 민족의 사람들,


다채로운 경력과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다양한 인식에서 출발해 나름의 입장과 각양각색의 형식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똑같은 정성을 기울여 창조해왔다. 따라서 음악에는 서술의 존재만 있을 뿐 다른 존재는 없다. _‘음악의 서술’ 중에서


> 작가에 대해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삶처럼 소박하다. 산속의 돌이나 물가의 비탈, 먼지 날리는 도로, 미시시피강의 범람하는 홍수, 저녁 식탁과 술 중개상의 위스키 같고 활짝 열려 땀을 내보내는 모공이나 담뱃재 묻은 입술 비슷하다.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은 것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향수도 없고 군더더기 화장이나 치장도 없이 맨발로 어슬렁거리는 듯하다. _‘윌리엄 포크너’ 중에서


내가 보기에 문학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한한 부드러움의 상징이고 카프카는 극단적 날카로움의 상징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거리를 넓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꽃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 우리의 문학은 이렇듯 상반된 유언遺言을 모두 수용하는 동시에 그 광활함이 때로는 보이지 않게 일치한다는 사실도 넌지시 암시한다. _‘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중에서


내가 보기에 루쉰과 보르헤스는 문학에서 명확하고 기민한 사유를 상징하는 작가이다. 루쉰은 우뚝 솟은 산맥처럼 드러내고 보르헤스는 강물처럼 깊이 파고들면서, 두 사람은 일목요연하게 사유를 제시하는 동시에 사유의 두 가지 존재 방식을 보여준다. 문학에서 어떤 사람이 전율을 일으키는 대낮이라면 다른 어떤 사람은 불안을 야기하는 밤과 같다. 전자가 전사라면 후자는 몽상가이다. _‘따뜻하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여정’ 중에서


보르헤스는 시간의 강에서 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의 서술에서는 늘 고루한 뒷모습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환상의 목소리가 다가온다. 현실은 덧없이 사라지는 풍경에 불과하다. 그래서 1899년 8월 24일부터 1986년 6월 14일까지 세상에 등장했던 보르헤스라는 이름의 생명이 정말 이렇게 짧은 순간만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독서 중에 만나는 보르헤스는 역사처럼 오랫동안 기나긴 삶을 누렸을 것 같다. _‘보르헤스의 현실’ 중에서


헤밍웨이의 서술이 맑은 하늘처럼 명쾌하고 소나타처럼 통통 튀는 리듬감이 있다면, 로브그리예의 서술은 낮과 밤이 교차하는 황혼처럼 어두침침하고 햇빛 아래의 그림자처럼 느릿하게 움직인다. _‘심리적 죽음’ 중에서


윌리엄 포크너, 도스토옙스키, 스탕달의 문장을 되짚어볼 때면 그들의 엄청나게 풍부한 서술에 붙들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곤 한다. 내 소임은 그저 그들 서술의 특정 방면을 지적하는 것뿐인데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준다. 그들은 줄리앙 소렐의 손 같고 내 글쓰기는 레날 부인의 잡힌 손 같아서 나는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서술의 힘이다. 느낌을 드러내든 생각을 드러내든 작가는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된다. _‘심리적 죽음’ 중에서


확실히 카프카는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그는 흐름에 밀려서가 아니라 기슭에서 물길을 거스르듯 등장했다. 수많은 흔적을 봐도 카프카가 외부에서 우리 문학으로 들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신분은 《성》의 K처럼 부자연스럽고 당돌한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_‘카프카와 K’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