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인생의 어느 한쪽이 당장 안 풀리는 것처럼 보여도 하루하루 형태를 잘 유지하며 살아가다 보면 다른 한쪽은 분명히 풀려가기 마련이다. 밑도 끝도 없이 ‘단정한 자유복’을 입으라던 내 면접은 실패했어도 그 면접장 밖에서는 누구보다 단정하게 자유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구 앞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도 내가 어떻게 비칠지 주위 사람을 살피지 않아도 되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싶다. 한없이 자유로워 보이는 모습 속에서도 깨끗한 손끝처럼, 단정함이 돋보이는 그런 사람처럼.

-「단정하되 자유롭게」 중에서

정신 승리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이 무능의 프레임을 역방향으로 전환해보기로 한 것이다. 우선, 내가 운전을 배우지 않음으로써 누군가가 얻게 되는 기회가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각종 기술(자격증)은 곧 생존(취업)과 직결돼 있다. 운전과 연관된 모든 직종에서 나는 배제됐으며 이력서 자격란에 넣을 내용도 남들보다 한 줄 부족하다. 나는 면허를 따지 않기를 자발적으로 택함으로써 나보다 유능한 누군가에게 취업할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30대에 운전을 못 하면 벌어지는 일」 중에서

그렇게 몇 번의 도피성 여행을 떠났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듯 마냥 그을려서는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의 기억과 보고 느낀 이야기를 잔뜩 짊어진 채로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일상을 다시 살아갔다. 비행기 티켓을 마치 복권인 양 고작 몇십만 원 사치에 행운을 기대하며 스카이스캐너 최저가로 도망친 사람의 운명은, 시간을 대가로 빛나는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와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건 가난한 여행자들의 슬픈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에 진 빚은 언제라도 꼭 갚아야 했다.
-「해외여행이 싫어질 때」 중에서

노력하지 않고 유명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 대신 유명해질 사람을 찾는 것이다. 유명해지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싶으면 유명한 친구를 사귀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노력하지 않고 유명해지기」 중에서

다수가 갖는 욕망을 좇기보다는 자기만의 기쁨을 찾으려는 사람,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행복한 일에 돈과 시간을 쓰고 싶은 사람, 소비를 과시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까지. 남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행복에 가까운지, 무엇이 가장 나다운지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작은 집에 사는 기쁨」 중에서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야 무엇이라도 될 수 있을 거라고. ‘우린 아직 젊으니까’라고 불합리한 시대 탓을 하며 꿈을 유예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행위가 우리 존재를 앞서기도 한다. 묵묵히 일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고, 꾸준히 쓰다 보면 작가가 되고, 노래하다 보면 가수가 되고, 찍다 보면 감독이 되고, 운동하다 보면 바디프로필도 찍는 거고. 그게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간절히 무엇이 되고 싶다고 꿈꾸면서 고통스럽다면, 그 무엇이 되기 전까지는 한번,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고 생각해보는 편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고.
-「아무것도 되지 않으려야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중에서

이 사회는 힘없는 이들의 연대를 갈라놓는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탓에 정들었던 동료들을 몇 개월 주기로 차례차례 떠나보내야만 한다. 이제는 어디서 무얼 하며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구태여 만나기도 애매한 사이가 되어버린다. 인간은 작별 앞에서 한없이 겸손하고 감사해진다.
-「정규직은 천국에 가지만 비정규직은 어디든 간다」 중에서

몇 번의 긴 여행을 하며 신호등 건너편에서, 길모퉁이에서, 기차 건너편 좌석에서 결국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는 로또 당첨처럼 거창한 게 아니다. 길을 걷다 아는 사람을 마주치듯 매일 자잘한 기쁨을 만나고, 그 순간만으로도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을 찾아갈 거야」 중에서

나는 단지 그녀들에게 내 사랑의 답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관계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식 전날까지 기억날 운명적인 연인은 아니었지만, 지난 시절 좋은 친구 사이였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함께한 소중한 관계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자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모르고 지나쳤을 기쁨과 슬픔이 아주 많았을 것이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준 모든 여자들에게」 중에서

‘건물주’가 꿈이 되는 시대, 건물주가 되는 일은 물론 어렵다. 특히 서울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건물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이곳에서 할머니가 오래된 건물을 대하는 방식, 머무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고 싶었다. 이 건물 자체가 할머니 같다고도 생각했다. 이곳을 돌보는 할머니가 없다면 이 건물도 아마 다른 모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