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비극적인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의 사회적 기록)
산만언니
2021. 06. 11
16,000원
256페이지
9791156758822

사회적 참사는 개인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더는 같은 고통을 겪는 이가 생기지 않도록, 온몸으로 써내려간 기록 
2018년 4월,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글이 한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었다. 1995년 일어난 삼풍백화점 참사는 일개 공무원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받았음에도 자신은 그 불행이 가져다준 여파로 인해 20여 년이 지나서까지 고통 안에서 살았다는 고백이었다. 이 글은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가 세월호를 비롯한 사회적 참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다고 역설한다. 해당 글은 각종 검색 포털 1위를 차지해 누적 조회수 100만 뷰를 달성하고 5,000건 이상의 추천을 받았으며, 수많은 인터넷 신문에 기사화되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매년 4월이면 재소환되고 있다.
이 책은 해당 글을 쓴 삼풍백화점 사고 생존자가 고백하는 ‘참사 이후 이야기’다. 저자는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비틀어놓았는지 낱낱이 공개한다. 그날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시작된 이 비극의 역사는, 우연히 살아남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제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다”
삼풍 사고 당사자가 고백하는, 붕괴 이후의 삶
1995년 6월 29일 그날 일어난 삼풍 참사는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삶에 얼룩처럼 남아 더 많은 불행으로 번지는 듯했다. 사고 당시의 상황과 사회적 참사의 당사자가 된 심정뿐 아니라 친아버지의 자살, 친오빠의 학대, 자신의 우울증과 자살기도, 직장 내 괴롭힘과 퇴사까지 생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번번이 돌부리가 되어 그를 넘어뜨렸다. 그때마다 그는 조금씩 비틀거렸지만, 그럼에도 결국 살아냈다. 불행에 집중하기보다는 불행으로 얻어낸 것들에 주목한 결과다. 그는 “그 모든 일을 겪어왔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따뜻했다고”, “슬프지 않았던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다”고 서술한다. 수많은 비극 안에서도 기어코 살아낸 이가 들려주는 담담한 고백은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 안지 않는 법을 알려주고, 지난한 삶이라 해도 기꺼이 살아볼 만하다는 용기를 선물한다. 

“한 사람이라도 제 글에 위로받을 수 있다면, 피를 내서라도 써야지요.”
1995년 사고와 함께 봉인한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낸 이유
이 책은 딴지일보 포털 사이트에 연재했던 〈저는 삼풍의 생존자입니다〉를 도서화했다. 인터넷 연재부터 단행본을 위한 개고, 추가 글 집필까지 장장 3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날의 기억이, 습도, 온도, 사이렌 소리, 피비린내, 회색빛 먼지 구름까지 전부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바람에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었고, 쉽게 글을 이어가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써내려가 결국에는 마침표를 찍었다. 
고통스러워도 계속 글을 썼던 이유는 단 하나다. 살아남은 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계속 형태와 이름을 바꾸어가며 우리 사회에 나타났다. 특히 저자는 ‘세월호 참사’, 자신이 참사를 겪을 당시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바닷가에 빠져 죽은 그 사건을 기점으로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진실을 깨달고 펜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겪은 불행이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상처를 기록으로 남기고, 원가족을 잃은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하며 타인의 고통을 보듬는다. 또 다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을 이해하고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데까지 나아간다. 쓰라린 상처를 덧나게 내버려두지 않고 타인을 껴안는 빛으로 승화시키는 그의 태도는, 삶에서 붕괴를 겪어낸 수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준다. 

[추천사]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산다. 평온한 한낮에 마음은 과거의 붕괴를 재경험한다. “그날의 습도, 온도, 사이렌 소리, 피비린내, 회색빛 먼지 구름까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언어를 잃는다. 말 그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다. 칠흑 속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 과정을 글로 남기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그 일을 완수함으로써 삶에서 붕괴를 경험했던 많은 이에게 언어를 선물한다. 용기와 온기를 내어준 작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 김보라(영화감독)

아픔을 이해하게 된 사람은 어둠 속에서 빛이 아닌 더 큰 어둠을 본다. 이 책을 읽으며 사회적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해양안전법·소방법 등이 변화했다는 걸 아프게 깨달았다. 이때 비극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안전의 역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겐 빚이 있다. 그 빚이 빛이 되는 법에 대해 이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삼풍 생존자인 그의 목소리가 내겐 단단한 문장을 넘어선 사회적 증언이고,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이며, 아픔이 길이 되는 법으로 읽힌다. 당신도 그러하기를, 그렇게 가닿길 바란다. ― 백영옥(소설가)

산만언니

1995년, 스무 살에 삼풍백화점에서 일당 3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몹시 아팠다. 밖에서는 멀쩡히 웃고 떠들고 잘 지내고 돌아와 가만히 손목을 긋기도 했고, 일하다 말고 갑자기 집으로 가 수면제를 한 움큼 집어삼키고 누워 있기도 했다. 그 후로 오랜 시간 치료를 받았고, 그 일을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은 생존자가 침묵하는 딱 그만큼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는 침묵하지 않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 딴지일보에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를 썼고, 이를 계기로 딴지일보에 〈저는 삼풍의 생존자입니다〉를 정식 연재했다.
앞으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지난날의 상처를 통해 무엇을 보고 또 느꼈는지. 특히 삼풍 사고가 생의 지축을 어떻게 뒤바꾸어놓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 프롤로그 | 그러니 당신도 살아 있으라

제1장. 생존의 기억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7분
방황의 나날들 
비극의 시작 
10년이 지나 죽기로 결심하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에게 
감당하지 못할 빚더미 
타인에게 욕먹는 일
불행을 맞이하는 법 
고단해도, 살아야겠다 

제2장.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들
혼자 만드는 천국은 없다 
벼랑 끝에서 붙잡혀버린 손 
슬프지 않던 모든 날이 행복이었음을
숨지 않기, 침묵하지 않기, 기록하기
무례하지 않게 온기를 전하는 법 
담백하게 위로하는 마음 
서로에게 기꺼이 기대면 안 될까 

제3장. 익숙한 비극 사이에서 건져 올린, 인간이라는 희망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타인을 안다는 착각 
위로는 행동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에 대하여 
다시 배워나가는 일상 
밥 먹고 다니라는 말 

제4장. 상처가 상처를 끌어안을 때
삼풍과 세월호 
상갓집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최소한의 배려 
용서의 무게 
진도 막사에서의 밤 
자꾸만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들 
상처받은 이가 상처받은 이에게
계속 쓰고 말하기로 했다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소명 

| 에필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부록 | 삼풍백화점 참사의 기록 

그런 의미에서 불행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가끔은 ‘나를 괴롭히며 쓰는 글이 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하지만 내게는 이 글을 통해 세상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따뜻했다고. 눈물 나게 불행한 시절도 있었지만, 가슴 벅차게 감사한 순간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살아만 있으라고. 그러다 보면 가끔 호사스러운 날들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이 말을 하고 싶어 쓰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_ 28쪽, 〈제1장_생존의 기억〉

요즘은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자꾸만 욕심이 난다. 내가 겪은 사고 이후의 고통을 생생하게 잘 적어
놓으면, 이를 모르고 살던 수많은 사람이 참사가 주는 비탄이 어떤 것인지 공감할 테고 그러면 건물이 되었든 배가 되었든 그 일을 하는 엔지니어들은 설계도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시행사와 시공사도 안전 규정을 준수하고, 감리기관은 꼼꼼하게 관리 감독할 것이며, 해당 공무원은 인허가 기준을 확실히 세우고, 국가기관은 재난 대처방안에 대해 더욱더 많은 연구를 해 대응방안을 낼 테고, 사법부는 선례로 남을 피의자들의 판결을 지금보다 더 신중한 자세로 내릴 테니까.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안전해질 테니까. 잘하면 이를 통해 시민사회는 돈이 된다 해도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사람이고, 이 세상에 작업자의 목숨보다 비싼 기계는 없다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목숨은 돈 얼마에 결코 등가교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_ 83, 84쪽, 〈제1장_생존의 기억〉

지금 앓고 있는 불안과 우울이 전부 ‘삼풍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내게 이토록 영향을 미친 것은, 당시에 내가 그 사고를 통해 원 없이 망가질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 부상 정도, 사고 당시까지의 개인적인 경험, 유전적 성향이나 기질, 가치관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맞아떨어졌기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이제 나는 그 일에 더는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만큼 오래 아팠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그렇다.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나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95년 6월 29일 이후로 내 세계관은 완벽하게 뒤바뀌었다고, 그런 이유에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해도 나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이런 슬픈 역사는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_ 91, 92쪽, 〈제2장.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들〉

나는 차가워 봐서 따뜻한 것을 알고, 어두워 봐서 밝을 수 있으며, 너무도 절절하게 외로워 봐서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또 불행해 봐서, 자다 일어나 벽을 치고 흐느낄 정도로 불행해 봐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안다. 전에는 행복에 대해 대단히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겪은 불행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행복도 불행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을 깨고 안방으로 들이닥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행복은 요란하지 않게 삶에 스며들었다. 그러니까 행복은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다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여태 살아오면서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이 전부 행복한 날들이었다. _ 103쪽, 〈제2장.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들〉

나한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있다. 그런 불행은 나뿐 아니라 세상 누구도 겪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한말씀만 하소서》에 나온 한 대목처럼,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까지도. 종교에 의지하니 예전처럼 앞으로의 운명이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눈이 앞에 달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고 산다고 해도 뒤에서 던지는 돌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옆 사람한테 대신 좀 봐달라고 부탁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유기적으로 서로 협력해야 한다. _ 147, 148쪽, 〈제3장_익숙한 비극 사이에서 건져 올린, 인간이라는 희망〉

얼마 전 우연히 한 학생이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학생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왜 아이들을 잃은 부모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까요?” 나는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잘 모른다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나도 그러했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다고. 반대로 알면 그럴 수 없다고. 그러니까 알아야 한다고. 그 말을 하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아, 계속 말해야겠다. 이게 어떤 슬픔이고 고통인지 사람들이 알 때까지 내가 자꾸자꾸 말하고 다녀야겠다.’ _ 237쪽, 〈상처가 상처를 끌어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