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숲출판사
도서정보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가노코 히로후미
2017. 02. 27
15,000원
312페이지
9791156756804

노년이 되어도, 정신이 좀 혼미해져도, 최소한의 인간적 위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요리아이 노인홈은 노인을 맡아주는 시설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더불어 즐거운 일상을 빚어가는 공간이다.
-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모멸감』 저자)

상상해본다. 내가 만약 치매 노인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될 때 어디에 있고 싶은지를. 나는 살던 곳과 격리된 낯선 시설에 맡겨지고 싶지 않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면 물을지도 모르겠다, 달리 방법이 있냐고. 이 책은 증언한다, 방법이 있다고.

- 최인아 (최인아책방 대표)



“나는 늙으면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살게 될까?”

후쿠오카에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요양원이 있다

후쿠오카 시 조난城南구의 주택가에 자리한 2층집. 마치 셰어하우스 같이 생긴 이곳은 ‘다쿠로쇼 요리아이’(‘다쿠로쇼’는 자택, ‘요리아이’는 모임이라는 뜻)라는 특별 노인요양시설이다. 이곳에 사는 치매 노인들은 다른 요양시설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삼시 세끼를 먹고, 잠을 자고,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하지만 그 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보통 알던 요양시설과는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 요양시설이라면 ‘통제’하거나 ‘금지’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다.
보통 요양시설에서는 치매 노인의 외출을 허용하지 않는다. ‘요리아이’에서는 산책을 좋아하는 노인은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을 때까지 걸을 수 있다. 직원은 노인이 길을 잃지 않도록 따라가지만, 산책에 방해되지 않게 거리를 유지한다. 속도와 효율성을 중요시한다며 단팥빵도, 야채도, 흰쌀밥도 모두 갈아버린, 기분 나쁜 음식을 주지 않는다. 이가 몇 개 남지 않은 노인이 음식을 씹느라 식사 시간을 넘기더라도 재촉하지 않고 탱글탱글한 계란말이를 충분히 즐기며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린다. 직원들은 가끔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노인들을 차에 태우고 시장을 보러 간다. 매일 오후 4시에는 주방에서 직접 만든 간식을 내온다. 시폰케이크, 찹쌀경단, 슈크림, 젤라토……. 노인들은 입 주변에 얼룩을 만들며 흡족하게 맛을 즐긴다. 일주일에 한 번 개방하는 ‘요리아이’ 카페는 케이크와 빙수를 먹으러 오는 동네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치매 노인들도 손님인 듯, 주인인 듯 의아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치매 노인이 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치매에 걸려도 ‘사람다운’ 생활을 하고 싶다

마치 유토피아 같은 일상이 펼쳐지는 ‘요리아이’는 보증금만 1억이 넘는 고급 실버타운도,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진 대학병원 요양원도 아닌 정원 26명의 소규모 요양시설이다. ‘요리아이‘는 1991년, 덴쇼지라는 사찰 다실에서 간병 서비스를 시작해 낡은 집을 빌려 임시로 운영하다가, 2011년 지금 자리에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2015년에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이후 2호와 3호 ‘요리아이’도 후쿠오카에 문을 열었다. [도쿄케이자이] 신문은 “새로운 간병 모델을 제시한 요리아이는 정말 눈부시다”고 보도했고, [서일본신문]은 ‘요리아이’를 “지역 복지의 거점을 마련한 성공 사례”로 꼽았다.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지큐 재팬]에 기고한 글에서 “요리아이’는 노인을 ‘물건’이 아닌 ‘인간’으로 대하며, 시설이나 사회의 시간을 강요하지 않고 노인들의 시간에 맞춘다”라고 ‘요리아이’를 관찰한 소감을 전했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는 돈도 권력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는 스스로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특별 노인요양시설 ‘요리아이’를 설립한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출간 즉시 일본 아마존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일본 대형 서점 야에스 인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맨주먹으로 출발해 돈을 모으고, 땅을 사고, 주민의 동의를 얻어 시설을 짓기까지 25년간의 과정은, 무모하지만 절실하고, 눈물겹지만 따뜻하다. 가진 건 없지만 배짱 하나는 두둑한 ‘요리아이’ 사람들과 치매 노인들이 일궈내는 유쾌한 에피소드는 치매는 ‘재앙’이라고 여겨왔던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이 책은 치매 노인을 ‘없는 존재’ 또는 ‘밥도둑’으로 치부하는 사회를 향해 따끔하게 경고한다. ‘치매 노인을 훼방꾼 취급하는 사회는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훼방꾼 취급을 하게 된다’고.

“할머니 한 분도 보살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복지예요!”
곤경에 빠진 노인 한 명을 돕기 위해 시작했다

‘요리아이’ 역사는 독특한 간병 전문가 시모무라 에미코가 이웃도, 시설도 모두 포기한 초강력 치매 노인 오바 할머니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오바 할머니는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시모무라의 제안에 “노인 요양시설이라니 뭔 헛소리야! 난 여기서 살다가 객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라며 단박에 거절한다. 낯선 곳에 끌려가느니 악취와 오물에 뒤섞여 살지언정, 죽어도 내 집에서 죽겠다는 오기이자 분노의 표출이었다. 시모무라는 이 기개 강한 할머니를 돕기 위해 동료들을 끌어 모아 사찰을 빌려 데이 서비스를 시작한다.
제도도, 시설도 없지만 ‘곤경에 빠진 노인 한 명을 위해’. 이 행동 원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요리아이’를 지탱해온 기본자세이기도 하다. ‘요리아이’ 사람들은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앞뒤 재지 않고 일단 행동에 옮긴다. 시스템이나 규율에 사람을 맞추지 않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맞추려 노력한다.
오바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간병 서비스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노인들로 결국 사찰은 넘쳐났고, 시모무라와 동료들은 ‘자신이 안심할 수 있는 장소는 스스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낡은 주택을 빌려 더 많은 노인들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한다. 한 독거 치매 노인을 돕기 위해 출발한 ‘요리아이’는 갈 곳 없는 노인들과 부모를 차마 감옥 같은 병동에 보낼 수 없는 가족에게 ‘내 집 같은 곳’이 되었다.
모든 수고를 돈 주고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지만, 돈으로 해소되지 않는 불안이 있기 마련이다. 치매에 걸리면 집을 떠나 낯선 곳에 끌려가는 건 아닌지, 가족 입장에서는 믿고 맡긴 시설에서 부모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건 아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존재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 책은 ‘복지’를 시행하는 국가와 전문가가 잊지 말아야 할 질문을 던진다. 간병은 서비스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뤄야하지 않는가? 도움이 필요한 한 사람도 돕지 못한다면 과연 그것을 복지라 할 수 있는가?

죽기 하루 전날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상이다
삶의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다

시설에 들어간 노인들은 사회에 격리된 채,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걸까?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는 없는 걸까? ‘요리아이’는 치매 노인들이 자택에서와 같이 생활하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먹고, 마시고, 수다를 떨고, 이웃의 얼굴을 보는 것. 삶의 기본을 지키는 일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세 끼 모두 직접 조리한 음식을 내놓는다
차가운 배식판 말고 밥은 밥공기에 된장국은 대접에, 반찬은 접시에 담아 집밥 다운 밥을 먹는다. 잘 씹지 못한다고 해서 믹서에 갈아 만든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 노인들과 직원들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즐긴다. 주방은 음식 만드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탁 트여 있다. 덕분에 호기심 많은 노인들은 ‘오늘 점심은 뭘까?’하며 주방을 기웃거린다.

소독약 냄새가 아닌 나무 냄새가 난다
 ‘요리아이’ 직원들은 아무리 보아도 시설로 보이지 않는 시설을 원했다. 소독약 냄새가 나고 차가운 하얀 바닥이 깔린 병원 같은 공간에서는 아무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계절 변화를 볼 수 있는 창문, 따뜻한 조명,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 위치에 따라 벚꽃이 보이는 방……. 한가로운 오후에는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운다.

동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시설에 들어간 사람이 격리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딱딱하고 우울한 시설에 놀러가고 싶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요리아이’는 과자와, 케이크, 커피, 점심식사를 파는 카페를 운영해 주민과의 벽을 허물었다. 매주 이곳을 찾는 단골이 생겼다. 마당이 넓어 아이를 데리고 오는 부모도 있다. 치매 노인들도 ‘케이크를 여기저기 흘리며 조용히 음미’한다. 카페와 건물은 넓은 데크로 연결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도 사람들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돈은 늘 부족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아직 따뜻한 돈이 존재하기에

‘요리아이’는 빈손으로 시작해 1억 2천만 엔을 모아 땅을 사고, 추가 보조금 1억 1천1백만 엔을 받아 건물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직원은 두 배로 늘었다.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는 간병 방식은 변함이 없다. ‘요리아이’ 같은 곳이 한 동네마다 하나씩 있다면 좋겠는데, 과연 가능할까? 노인은 많고, 돈은 부족하다. 급료가 적고 일이 고된 간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적다.
‘요리아이’가 제시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원의 힘만으로는 이런 시설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간병을 공동체의 몫으로 돌리려는 것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사회 안전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요리아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101명의 후원자들을 비롯해, ‘금액이 너무 적어서 미안합니다’라며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원들이 손수 만들어 파는 딸기잼과 바자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가게에 모금함을 놓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요리아이’ 사람들이 원하는 집을 짓기 위해, 밤을 새어가며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가 있다. 까다로운 건물 규정을 차근차근 상담해주는 시청 직원이 있다. 그리고 한여름에도, 한겨울에도 모금 활동을 멈추지 않는 ‘요리아이’ 직원들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간병이나 치매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어쩌다보니 ‘요리아이’ 돌보미가 되어 치매 잡지까지 만들고 있다. 치매를 앓던 어머니를 모신 경험이 있는 일본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는 우연히 ‘요리아이’와 인연이 닿아, 자선행사 때마다 즉흥시를 지어 재능기부를 한다.

맡겨지고 싶지 않다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아는 얼굴과 살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늙는다. 슬프지만 피할 수 없다. 치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노인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미래에 내가 받을 돌봄을 ‘저축’하는 것과 같다. 꼭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다. 주변에 있는 노인들을 좀 더 주의 깊게 살펴보고, 뜻이 맞는 곳에 기부를 하고, 치매 노인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서슴없이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처럼, 힘없는 노인 한 명을 돌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 모이면 가능하다. 치매 노인도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은 사람이 나눈다면 우리도 곧 ‘요리아이’ 같은 곳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노코 히로후미
저자 : 가노코 히로후미
저자 가노코 히로후미는 1965년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졸업했다. 록 잡지〈온 스테이지〉,〈다카라지마〉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시티 정보 후쿠오카〉 편집부를 거쳐 1998년부터 프리랜서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요리아이 노인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잡지 〈요레요레〉를 창간해 현재 4호까지 발행했다. 〈요레요레〉는 전례 없는 기획, 재미있는 이야기, 독특한 지면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창간호는 발간되자마자 독립서점 북스큐브릭 베스트셀러 14주 연속 1위를 기록했고, 3호가 발간된 뒤 18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에서 3위까지 〈요레요레〉가 모두 휩쓸기도 했다.

역자 : 이정환
역자 이정환은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 현재 동양철학 및 종교학 연구가, 일본어 번역가, 작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지적자본론》,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도쿄대 바둑 강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가슴에 바로 전달되는 아들러식 대화법》, 《창을 순례하다》 등이 있다.

1부 맨주먹으로 출발: 곤경에 빠진 한 노인이 있었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13
“나는 객사할 각오가 돼 있어!” 19
노인을 ‘맡긴다’고? 30
치매 세계로 초대합니다 40
‘요리아이’ 돌보미는 절대 주저하지 않는다 50

2부 쓰레기 저택: 무모해서가 아니라 절실해서
노인 한 명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57
통원보다 숙박, 관리가 아니라 생활 64
내 집 같은 특별 요양시설을 만듭시다 71
‘요리아이’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76
치워도 치워도 85
“카페 마담이 꿈이었어”93

3부 돈은 늘 부족해: 혼자 애쓰지 말고 둘, 셋이서
케이크를 굽고, 콘서트를 열고 101
동네 사랑방이 된 요양원 카페 108
운영부, 건축부, 자금부를 꾸리다 111
받아도 되는 돈과 받으면 안 되는 돈 120
돈이 없으면 부끄러운가요? 127
딸기잼과 바자회 철이 왔습니다 135
세상에, 8백 명이나 모였다고요? 143
‘요리아이’ 자선경매 시작합니다! 149

4부 ‘치매 잡지’를 베스트셀러로: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10년 동안 ‘프리’했던 프리랜서 편집자 159
당신이 만드는 잡지를 읽고 싶습니다 168
치매 잡지 독자는 모든 인류다 171
창간호 표지가 이래도 되나요?179
마음대로 만들어도 좋지만 흑자를 내야합니다 183
우리를 기다리는 ‘늙음’이란 추한 것일까? 188

5부 품위, 수다, 케이크: 삶의 기본을 포기하지 않는다
뒷걸음질하더라도 으샤으샤! 199
동네 사람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201
소독약 냄새 대신 나무 냄새 216
갓 지은 밥에 따뜻한 된장국 223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다 231
7천만 엔이 걸린 운명의 날 237
“여러분 덕분입니다” 240

6부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곳: 여기는 즐겁고 소중한 특별 노인요양시설
거대한 회오리바람 앞에서 249
한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253
세상에는 여전히 따뜻한 돈이 있다 257
열정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262
“요리아이 직원으로 뽑아주세요” 271
시설과 사회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276
케 세라 세라~ 어떻게든 될 거야~ 285

마치는 글 더 많은 ‘요리아이’를 위해 298
감사의 말 309

“넌 뭐야! 뭔 일이야!”
시모무라는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만난 할머니 중에서도 최강에 속하는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시모무라는 현관 앞에 선 채 오랜만에 만난 강적을 보고 기쁨에 떨며 오바 씨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코로 숨을 쉬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냄새에 휘감긴 채 시모무라는 두 시간 이상 요괴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래서, 나한테 뭔 볼일인데”
“노인요양시설로 들어가시지 않겠어요? 노인요양시설은 편안한 곳이거든요.”
그러자 오바 씨는 시모무라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험악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노인요양시설이라니, 뭔 헛소리야! 너하고 뭔 관계인데! 나는 여기서 살다가 객사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 썩 꺼져!”
--- pp.22-23

제도가 있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시설을 만들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목표가 있어서 하는 일도 아니고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일도 아니다. 눈앞에, 어쿽게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 pp.25-26

재활 치료도 무슨 놀이도 하지 않는다. 즉 쓸데없는 일은 전혀 하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 p.28

“맡긴다니! 노인은 맡기는 대상이 아냐! 당신들, 노인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마!
--- p.38

‘다쿠로쇼 요리아이’의 간병은 노인 한 명이라도 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자세로 시작된다. 그 사람의 혼란을 함께 겪고 환자가 처한 상황에 맞추려 한다.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맞추는 것이다. 이래저래 구속하거나 제지하는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강물의 속도에 맞추듯 자연스럽게 맞춘다.
--- p.60

이 시점에 이런 땅을 만난 것도 인연이다. 이 땅을 놓치면 후회막급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단, 문제가 있다면 1억 2천만 엔이라는 돈이다. 아무리 시세보다 낮은 금액이라고는 해도 가난해서 쉴 틈도 없이 돈을 벌어야 하는 ‘요리아이’에 그렇게 큰돈이 있을 리 없다.
--- p.75

진정한 안도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안도감은 결국 지불한 금액만큼만 손에 쥐는 등가교환의 상품권이다. 멋지고 화려한 팸플릿에 쓰여 있는 희망에 찬 문구는 진정한 희망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멋지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것이다, 그런 존재에 무엇인가를 맡길 수는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p.77

발을 들여놓은 순간, 모든 사람이 가벼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낡은 저택’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방이 지저분했다. 완전 먼지 소굴이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다.
--- p.87

‘숲속에 있는 은둔지 같은 카페’의 존재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고 신기하다 싶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찾아왔다. 점심을 50인분 이상 판매하는 날도 많았고 식후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도 한층 늘었다.
--- p.108

“우리 힘으로 모았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돈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무리 멋진 건물을 지어 올린다 해도 의미 없는 돈으로 지은 건물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 p.126

모금함 설치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던 차에 발상을 약간 전환해보기로 했다. 혼자 가는 것이 무리라면 둘이 다니면 된다. 둘이서도 불안하다면 셋이 가면 도니다. 넷이 간다면 상대방이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르니까 그건 안 된다.
--- p.127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가져요. 당신은 부끄러운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돈이 없으니까 돈을 모으는 거잖아요. 그건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 p.130

‘요리아이’의 자금 만들기에는 ‘아기자기’ 계열과 ‘축제’ 계열 두 가지가 있다. ‘아기자기’ 계열만으로는 풀이 죽을 수 있고 ‘축제’ 계열만으로는 세심하게 챙겨야 할 일을 놓칠 수 있다. 양쪽을 역동적으로 섞어 추진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기자기’ 계열의 대표는 직원들이 직접 만드는 잼이다. 계절 과일에 설탕과 레몬즙을 얹어 충분한 시간 동안 고아서 만드는 맛이 소박한 잼, 이것을 팔아 자금을 모은다.
--- p.135

잡지 [요레요레]는 내 마음대로 만들어도 상관없는 대신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흑자를 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손수 만드는 잼과 마찬가지로 [요레요레] 역시 돈을 모으는 데 필요한 무기였기 때문이다.
--- p.183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늙음’이란 정말 그런 걸까. 그렇게 추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 방해가 되는 사람이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내부에서 들려온다. 땅속 깊이 묻힌 항아리 안에서 울리는 통곡처럼 들려온다. 듣지 않는 쪽이 행복할지도 모르는 목소리다.
--- p.190

‘객사할 각오’란 아마 그런 상황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반발 섞인 각오일 것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거기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유 있고 당당하게 주먹밥을 씹어 먹겠다는 오기의 표명이다.
--- p.192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바로 이것이 창간호의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 p.192

“늙음은 슬픈 현상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무도 이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날 수 없다면 눈앞의 상황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맞서 싸워야 합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특별 노인요양시설을 만들고 함께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겠습니까?”
--- p.210

“우리가 생각하는, ‘굳이 요양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일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노인요양시설’은 그런 것입니다. 노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기 위해 방문했던 분이 다음에는 젊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 상황에 놓이는 노인요양시설입니다.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장소입니다.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 p.213

“대체 누구를 위한 건물입니까. 대체 누가 이런 한심한 조건을 세밀하게 정해놓은 것입니까. 이곳은 마음 편히 살기 위한 장소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을 모두 지킨다면 노인들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없습니다. 간병이 제대로 안 되는 이유는 관리와 효율만 우선하는 제도 때문입니다!”
--- pp.220-221

삶의 기본은 무엇보다 먹는 것이다. 갓 지은 따뜻한 밥과 따뜻한 된장국이 기본이다. 밥은 밥공기에 담고 된장국은 대접에 담는다. 그리고 접시에 반찬들이 담겨져 나온다.
--- p.226

나는 그런 직원들의 모습을 줄곧 지켜보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헌신적일 수 있을까. 나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힘든 상황을 함께 타개해나갈 때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지위나 명성을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 p.264

돈에 대한 집착을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보다 훨씬 아래에 놓으면 정말 행복해질지도 모른다. 악착스럽게 모아도 돈에는 그저 물물교환 시대의 물건 가치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돈이 ‘기부’라는 과정을 통하여 보람 있는 가치를 발산하게 될 때 돈에는 ‘온기’가 밴다. 따뜻한 마음이 밴다.
--- p.270

간판을 걸지 않으면 도저히 노인요양시설로 보이지 않는 건물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개방적인 학생 기숙사 같기도 하고 요즘 유행하는 셰어하우스 같기도 하다. 화려하지 않으나 안정감이 있고 느낌이 좋다.
--- p.276

뭔가 대가를 바라는 사람의 기부는 일절 받지 않았고 정치권력을 쥔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짓도 일절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새까맣게 변할 때까지 5엔짜리, 10엔짜리 동전을 세고 백 엔, 2백 엔을 열심히 저축해서 이 건물의 기둥을 세웠고 바닥을 깔았다.
--- p.291

“첫눈에 반해 ‘이곳으로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늘에 계신 오바 씨가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기가 좋아. 당신들은 여기에 있어야 해’라고. 왠지 그런 목소리를 들은 느낌도 듭니다. 어쨌든 한마디로 말해 이곳으로 우리를 데려온 사람은 노인들이라는 것입니다.” --- p.294